‘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듯한 풍경.
20대에서 50대까지의 다양한 나이대 남성들이 공사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해는 저물어 가고 있는데 십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노동자들을 바라볼 뿐 끝마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들 말없이 일은 하고 있지만 표정들이 조금씩 험악해진다.
개중에는 들릴 듯, 말 듯 욕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쒸벌놈, 지는 쳐다만 보면 된다 이거지?”
“그러니까 말이야. 염병, 지도 별거 없는 놈이 완장 하나 찼다고 실컷 부려 먹고 있어.”
“제 놈도 오래 일한 거 말고는 우리랑 다를 것도 없는 놈이 말이야.”
구시렁, 구시렁.
한번 시작한 뒷담화는 끝날 줄을 모른다.
십장 역시 귀가 먹은 건 아닌지라 멀리서 수군수군 들려오는 일꾼들의 목소리를 어렴풋이 듣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다 들어주면 일이 안 되는 법.
십장은 애써 무시하며 일을 지시했다.
“김 씨 아저씨, 이제 다 끝나 가니까 그것만 저리로 좀 옮겨 둬요. 거기 서 씨도 조금만 더 힘내고.”
그렇게 일은 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해가 완전히 저물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일꾼들은 녹초가 되어 자리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십장도 그제야 한계구나 싶었는지 자기 옷에 묻은 먼지들을 털며 마무리 지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눈치 없이 계속 해서 일을 하는 놈이 있었다.
20대 초반 정도로 되어 보이는 핏덩이 같은 놈.
십장은 그런 그를 보며 씨익 웃고는 불렀다.
“어이쿠, 다한아, 고생 많이 했다. 오늘은 그만하자!”
“예, 아재.”
십장의 말에 따라 다한이 어깨에 메고 있던 묵직한 지게를 땅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일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미련한 놈아, 그렇게 열심히 해도 돈은 똑같아.”
“놔둬, 이 양반아, 우리 다한이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데.”
먼저 앉아 있던 선배들이 다한을 보며 말했다.
다한은 그저 쑥스럽다는 듯 웃고는 곧장 그들의 옆에 앉았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다한이 자리에 앉자 십장이 품 안에 있던 봉투들을 꺼내며 입을 연다.
고대하던 그 순간이 온 것이다.
“자아, 김형철 씨.”
“아이고, 예”
“그 다음은 이형우 씨.”
“고마워.”
“또 정재현 씨.”
“예.”
같은 금액들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한 사람씩 불러 가며 봉투를 건네는 십장.
의미 없고 시간이 걸리는 행동이었지만 그에 대해 아무도 불평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약 1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다려 온 순간이다.
괜한 태클을 걸어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자아, 마지막으로 우리 다한이!”
“감사합니다.”
차례차례 봉투를 나눠 주기를 몇 분, 십장이 마지막으로 다한에게 봉투를 건넸다.
“그럼 다들 수고했습니다. 내일 다시들 또 봐요.”
“그래 내일 봐.”
“수고하셨습니다.”
십장이 마무리 인사를 하자 다들 따라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마치 짜기라도 한 듯 패거리끼리 모이기 시작했다.
저쪽은 술을 마시러 가는 김 씨 아저씨 패거리, 또 이쪽은 창가로 가는 서 씨 아저씨 패거리.
그렇게 몇몇씩 모이기 시작했지만 다한은 어디에도 끼지 않고 자신의 짐만을 챙겼다.
“다한이, 너 또 그냥 가냐?”
그런 다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거는 김 씨 아저씨.
“너 맨날 술도 안 마시고, 여자도 안 만나고 하면 무슨 재미로 사냐? 자, 우리랑 한잔하러 가자.”
어깨에 올려 뒀던 손을 손목으로 옮겨 다한을 이끌었다. 하지만 다한은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김 씨 아저씨를 거부했다.
“헤헤, 아재, 저 집에 어머니가 혼자서 기다리고 계세요. 얼른 들어가 봐야 해요. 다음에, 다음에 꼭 같이 한번 어울려 주세요.”
“쯧, 그러냐…….”
혼자 계신 어머니한테 간다는데 그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김 씨 아저씨는 아쉬운 듯 입을 다시며 다한을 놓아 주었다.
다한은 그렇게 죄송한 표정으로 몇 번 꾸벅거리고 짐을 챙겨 공사장을 나섰다.
터벅터벅.
일터를 뒤로하고 지친 듯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가는 다한.
집 가는 길에 있는 찬란한 네온사인 간판들과 전광판을 물들이는 광고들이 그를 내비쳤다.
그 전광판들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건 바로 ‘다이스 온라인’이라는 게임의 광고.
‘다이스 온라인’은 21세기 대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게임이었다.
‘다이스 온라인’으로 말하자면 현재 나와 있는 가상 현실 게임 중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임으로 그래픽이 현실을 방불케 할 정도라고 전문가, 비전문가 할 것 없이 칭찬 일색인 게임이다.
다한 역시 한 때는 미친 듯이 가상 현실 게임들을 즐겼다.
그렇기에 당연히 ‘다이스 온라인’도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기는 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와 집에서 혼자 앓고 있는 어머니가 계시기에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안 되지, 안 돼.’
‘다이스 온라인’ 광고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던 다한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가상 현실이 아닌 현실을 봐야 돼.’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정신을 붙잡은 다한은 호주머니에 꾸깃꾸깃한 봉투의 감촉을 느끼며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