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생체공학의 발달은 인류의 불편을 해소시켜 주는 것은 물론, 인간의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 혜택은 나에게도 돌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시신경 손상으로 오른쪽 눈이 실명 상태였는데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인공 안구를 이식함으로써 전혀 불편함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생체공학이 인간을 좀 더 풍요롭게,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혁신적인 기술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 생체공학 때문에 인류는 예기치 못한 재앙에 직면하게 됐다.
바로 기계 바이러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그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번져 나갔다.
‘테라’라고 명명된 바이러스.
그것에 감염된 이들은 급속한 변이가 일어나며 기계 괴물로 변해 버렸다.
그렇게 변한 이들을 인류는 ‘인펙터’라고 불렀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인펙터와 생존대전을 치렀다. 결국 인펙터를 막아냈으나 안전한 생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거대한 방벽을 세워야만 했다.
세상은 그렇게 둘로 나뉘었다.
기계 괴물이 득실거리는 인펙트존과 인류가 살아가는 세이프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형과 함께 세이프존 안에서 살았다.
형은 정부 산하 인펙터 전문 연구 기업의 연구원이고, 나는 이 시대의 모두가 기피하는 직업 1순위인 군인을 생업으로 삼고 있었다.
그것도 인펙터 전담 부대의 특전 하사관으로 근무한 지 삼 년 차.
내 이야기는 별거 없다.
방벽에 근무하며 간간이 출몰하는 인펙터들을 멀리 쫓아내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형은 다르다.
나이는 많지 않지만 인펙터와 인펙트존에 관해서만큼은 최고의 엘리트 연구원으로 꼽혔으니까.
나는 그런 형이 자랑스럽다.
열 살 터울의 형은 생존대전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키워준 존재다.
세이프존이 막 형성되어 가는 혼란스러운 시기, 그런 때에 형은 밤을 새워가며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나를 키웠다.
그 시절 형은 언제나 홀쭉한 얼굴에 광대뼈가 툭 불거진 모습이었지만, 어린 나는 밥 한 끼 굶어본 적이 없었다.
철이 들고 나서야 형이 어떻게 나를 키웠는지 알게 됐지만, 그땐 이미 지금의 나보다 형이 훨씬 성공한 후였다.
의무 복무 오 년을 끝낸 뒤 망설임 없이 직업군인을 택한 것도 형에게 더는 짐이 되기 싫어서였다.
솔직히 나보다 훨씬 잘나고 멋있는 형이라 그 보답 한번 해볼 기회가 없었다.
내게는 그런 형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형.
나를 살게 해준 형.
내게 유일한 가족인 형.
그 형이 얼마 전 범죄자로 낙인 찍혀 인펙터존으로 추방당했다.
나는 형을 구할 것이다.
아니, 구해야만 한다.
그건 이미 형의 소식을 듣는 순간 정해진 일이다.
내 직업이 군인인 것을 신에게 감사한다.
#1.
형이 연구소에 부임하고 얼마 안 된 시기였을 터다. 내 인공 안구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이.
나는 방벽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런데 저만치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빛살가루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빛살 가루가 스르르 움직이며 글자를 조합했다. 마치 홀로그램의 그래픽 효과를 보는 것 같았다.
- 안 돼! 살고 싶어! 저리 가!
글자는 소리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너무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 홀로그램을 본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방벽을 따라 걸을 때면 그런 메시지가 심심찮게 눈에 띄곤 했다.
- 조금만 더 가면 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
- 위험해! 이 앞에 인펙터가 있다!
- 매복이야! 매복! 으아악!
어떤 것은 바로 앞에서 소리치는 것처럼 생생한 메시지였고, 어떤 것은 굉장히 정제된 형태였다.
나는 이 사실을 형에게 알렸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역할을 대신해 준 형은 내 이야기를 흘려들은 적이 없었다.
“방벽을 따라 걸을 때만 나타나는 메시지란 말이지?”
“맞아.”
“어쩌면… 죽은 자가 남긴 데이터일지도 모르겠다.”
“응?”
“우리 뇌가 전기신호로 작동한다는 건 너도 배웠지? 그런데 죽음 직전에는 뇌에 다양한 현상이 나타나. 엔도르핀이 최대치로 분출되는가 하면, 감마파가 어마어마하게 치솟기도 하지. 즉 완전히 죽기 직전, 의식적 뇌 활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거야. 물론 심장이 정지한 직후부터 20초에서 30초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뭔가 어려워.”
“쉽게 말해서 죽은 자들의 마지막 생각이 전기신호로 강하게 분출되면서 데이터로 기록된 거지.”
“으으! 무서워. 귀신이 되면서 글자를 남겼다는 거야?”
“풋! 그런 게 아냐. 데이터는 어디까지나 데이터야. 귀신 따윈 없어.”
“무서워. 왜 이런 게 보이는 거야? 나도 감염돼서 괴물로 변하는 거 아니야?”
“절대 그럴 리 없어. 걱정하지 마. 형 알지? 형이 언제 약속하고 안 지킨 거 있어?”
“아니, 없어.”
나는 힘차게 고개를 젓고는 물었다.
“그러면, 왜 나한테 그런 게 보이는 거야?”
“너의 그 눈.”
형이 내 오른쪽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태어나자마자 이식된 인공 안구.
“일종의 버그일지도……. 어쨌든 방벽 근처에는 가서 놀지 마라. 아무래도 인펙트존의 전자파 영향권이니까.”
그 후로 나는 형의 충고를 받아들여 방벽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인펙트존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확실히 이상한 메시지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그것도 의무 복무를 위해 입대하면서 깨지긴 했지만 말이다.
이 시대엔 남녀 할 거 없이 스무 살이 되면 무조건 오 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만 한다.
거부할 권리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
방벽이 무너지면 인류 역시 사라지니까.
나는 오 년 복무를 마치고 하사관으로 지원한 특이 케이스였다.
직업군인을 택하려면 입대 전, 사관학교에 들어가 장교가 되는 길이 훨씬 편하다.
생체공학 장기를 이식한 흔적만 없다면 누구나 다 장교가 될 수 있는 시대이기에.
복무 기간이 십오 년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직업군인이 귀한 만큼 해택도 많으니 나름 할 만한 직업이다.
물론 나는 대상이 아니었다, 눈 때문에.
하여간 체질이 군인인지 방벽이 편했다. 거기다 사회에 나가봐야 형의 짐만 될 게 뻔했고.
형은 대학을 가라고 준비까지 해줬지만 애초에 나는 머리보단 몸 쓰는 걸 즐기는 쪽이었다.
그렇게 하사관이 되고 막 삼 년 차가 되는 때 그 일이 일어났다.
형이 근무하던 연구소의 각종 비리가 폭로되면서 형이 그 모든 혐의를 뒤집어썼다.
권력이 없고, 돈이 없고, 줄이 없는 형은 선임 연구원이란 이유만으로 높은 형량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일명 가지치기.
거기다 형은 한 달 만에 인펙트존으로 영구 추방당했다.
그렇게 형을 보냈다.
정부가 인펙트존을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범죄자 영구 추방법’에 따른 처벌이었다.
생체에 칩을 이식한 채 인펙트존으로 추방당한 범죄자는 실험용 생쥐처럼 각종 데이터를 송출하다 그곳에서 죽어간다.
그것을 비인도적이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라도 저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그것이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니까. 그런 명분이 앞서는 시대이니까.
군대 안에 있던 나는 뭔가 해볼 수도 없이 형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차분히 준비했다.
형의 소식을 듣고 삼 개월이 지난 오늘, 그토록 기다리던 정기 휴가를 나온 내가 제일 처음 선택한 목적지는.
“당, 당신, 도대체 누구……?”
깨진 안경을 쓰고 코피를 줄줄 흘리는 양상필은 아침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런 처참한 꼴을 당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나는 놈의 머리카락을 콱 움켜잡았다.
“당신을 대신해서 인펙트존으로 추방당한 자의 동생, 이정우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KIZ그룹의 차남으로 실질적인 연구소장, 그리고 모든 비리의 실체가 바로 이놈이다.
양상필은 잠시 눈알을 굴리다가 내 손에 들린 식칼을 보곤 침을 꿀꺽 삼켰다.
“혹, 혹시 형이 이정혁 실장?”
“그래.”
“잘, 잘 생각하게. 자네가 지금 나를 죽, 죽이면 자네도 형처럼 인펙트존으로 추방당하게 돼!”
“할 말은 그게 다냐?”
“이, 이봐!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내가 없던 일로 해주겠어! 안 그러면 자네도 형처럼 추방당한다니까!”
“그래서 온 거다. 기왕 갈 거 너 같은 놈 목이나 따고 가려고.”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의 목울대에 식칼을 쑤셔 박았다.
한평생 형의 보살핌을 받았다.
이제는 내가 형을 지킬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