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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그림자 세계’는 신들의 창조권을 둘러싼 내기를 위해 우연히 선택된 인간들이 능력자가 되어 최후의 1인이 되기까지 무한 경쟁을 펼치는 내용으로, 극중 주인공 김정욱은 환영술 능력을 받아 원하는 이미지를 상상해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복제하고 변형하며 남의 눈에만 허상이 보이게 할 수도 있는 등 그의 능력의 진화는 무궁무진하다. 이 소설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최근에 본 영화 '23 아이덴티티' 였다. 영화 ‘23 아이덴티티’는 23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케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어느 날 케빈의 위험한 인격 중 하나인 데니스가 곧 깨어날 24번째 인격을 위한 먹이로 세 소녀를 납치하게 된다. 각각 여러 환영을 다루고 다양한 자아를 지니고 있다는 설정이 비슷해서 소설과 영화를 한데 모아 재구성해 보았다.

    ‘그림자 세계’의 주인공 정욱은 정신력이 강한 인물이다. 물체의 구성 원리를 세세하게 파악해 다시 재구성해야 하는 환영술은 엄청난 정신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정욱은 환영술 능력자가 되면서 기존 정신력이 강화되었으며 팔찌 아티펙트를 착용하면서 더 극대화되었다.
    강한 정신력과 뛰어난 현실 모사력을 가진 정욱이 ‘23 아이덴티티’의 주인공이 된다면 아마 케빈의 인격은 더 다양해지고 더 철저하게 구체화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능력자가 되면서 기존 삶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정욱이 ‘23 아이덴티티’ 영화로 넘어온다면 다중인격이 활성화되기 더 좋은 조건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영화 극중 케빈은 어린 시절의 학대와 고통 속에서 다양한 인격들이 생성되고 더 강해진다. 특히 케빈의 새로운 24번째 자아 비스트는 고통 속에서만 인간은 비로소 위대해진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능력자로 선택받으면서 기존 삶과 인간성을 모두 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밟게 된 정욱이 ‘23 아이덴티티’의 주인공이 된다면, 뛰어난 복제력과 정신력에다 외로운 삶을 견뎌야 하는 고통이 더해져 더 다양하고 강력한 자아를 생성해 냈을 것이다.

    웹소설의 배경 자체는 평범하다. 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하며 정욱은 대학 때문에 상경해 혼자 반지하에서 자취하고 있다. 정욱의 자취방은 예언자가 결계를 쳐놓았기 때문에 중립구역인 카챤트라와 마찬가지로 능력자들의 본능이 누그러지게 된다. 만약 영화의 배경이 웹소설의 배경으로 바뀌어 케빈이 사는 곳이 서울의 반지하 자취방이 된다면 아마 케빈의 자아 중 헤드윅이 차지하는 부분이 더욱 늘어났을 것이다. 카니예 웨스트를 좋아하고 혼자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헤드윅은 혼자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영화 극중 여러 자아들의 방 중에서 헤드윅의 방이 제일 취미거리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다 헤드윅은 창문 그림을 벽에 붙여놓고 창문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어리기 때문에 반지하의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데에 능숙할 것이다.

    ‘23 아이덴티티’에서 케빈의 또 다른 자아 데니스는 곧 깨어날 24번째 자아 ‘비스트’의 먹이로 바치기 위해 여학생 3명을 납치해 온다. 만약 데니스가 납치한 여학생 중 한 명이 정욱의 여동생인 정아였다면, 영화는 아마 매우 시시하게 끝났을 것이다. 정욱의 능력은 정아를 구출하는 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잠긴 문을 여는 것쯤이야 열쇠구멍을 재구성해 열쇠를 만들면 되기 때문에 간단하고, 비스트가 깨어나 쫓아와도 그의 눈에 환영을 투사하면 짐승의 특성을 기반으로 하는 비스트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여기에 정아를 좋아하는 찬기가 합세한다면 찬기의 공간왜곡능력이 더해져 케빈의 복잡한 지하실도 거리낌 없이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 세계’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신들의 선택을 받은 능력자가 각자 같은 신을 모시는 능력자끼리 모여 세력을 이루며, 무질서에서 태어난 혼돈이나 다른 신을 모시는 능력자를 죽여 능력을 강화하고 최후의 1인을 남기 위한 경쟁을 계속한다는 설정이다. 만약 ‘23 아이덴티티’의 세계관이 그러한 선택받은 능력자의 경쟁의 장으로 바뀐다면, 케빈은 자신이 속한 팀의 범접할 수 없는 최강자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케빈의 자아를 다 같은 사람이라고 믿지만 자아는 각자 별개의 능력과 경험을 지니고 있다. 자아에 따라 신체능력은 물론이고 몸의 화학적 구조도 다르다. 같은 그릇을 공유하고 있을 뿐 완벽히 다른 인격인 것이다. 각각의 자아는 각자 다른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기억하는 일들도 다르다. 한마디로 케빈은 23개의 자아가 각자 쌓은 무한한 경험과 능력을 한꺼번에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완벽히 분리된 인격이기 때문에 케빈이 능력자로 선택받는다면 인격마다 각기 다른 23개의 능력을 받게 된다. 만약 하나의 능력만 받게 되더라도 각자 인격에 따라 능력의 향상 방향이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발전 범위가 훨씬 넓어지게 된다. 물론 인격에 따라 능력의 수준이 달라 만약 혼돈의 공격을 받았을 때 운 나쁘게 능력이 약한 자아가 자리하고 있을 경우 죽게 될 확률이 높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긴 하다.

    주인공 케빈을 제외한 영화 속 주요 인물인 플레처 박사나 케이시가 웹소설에 등장하여 능력자로 선택받는다면, 아마 플레처 박사는 예언자의 임무를 맡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플레처 박사는 심리학 박사답게 케빈이 여러 자아들을 능숙하게 상대하고, 자신이 베리라고 속이는 데니스의 거짓말도 눈치 챌 정도로 눈썰미가 좋으며 세심하다. 다양한 사람들을 유연하게 다루고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는 세심함은 팀 능력자 전체의 전력을 다스리고 운용해야 하는 예언자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다.
    케이시는 케빈 못지않게 유년 시절이 고통스러운 인물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어린 시절부터 삼촌에게 성적 희롱을 당해왔고, 아빠가 죽은 이후 삼촌이 보호자가 되면서 숱한 학대를 받아 온 인물이다. 능력자로서의 본능이 결여된 채 가족애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정욱과는 다르게 케이시는 이미 애정을 가질 만한 가족이 없고 그나마 있는 혈육은 자신에게 학대를 자행하기 때문에, 아마 케이시가 능력자로 선택받는다면 하연 못지않게 능력자로서의 본능에 충실할 것이다. 그러나 케이시는 대의를 이유로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의견에 동조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하연처럼 예언자 편에 서지 않고 단독으로 행동하는 능력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능력자로서 부여받는 목숨이나 진화에 대한 집념은 강하나 하연처럼 팀 전체의 존명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감수할 정도의 희생정신은 케이시에게 없기 때문이다.

    바쁜 라이언 | 87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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