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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직하게 전개되는 정직한 스토리


    화공도담. 이름만 들어도 시대물의 향취가 물씬 느껴진다. 스토리의 배경이 되는 시대 분위기와 내용을 담아내야 하기에 섣불리 스토리를 전개해 나갈 수 없는 장르다. 그렇기에 작가의 내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소설은 ‘작가의 내공’이 무엇인지 또 어떠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막힘없이 읽히는 문장 구성과, 단어 선정, 필체... 이 중에 무엇 하나도 부족함이 없다. 스토리 역시 탄탄한 구조로 진행되며 매회 허투루 느껴지는 장면이 없다. 상황 하나하나가 차곡차곡 쌓여 긴 장편의 글이 완성된다. 그 탄탄함에 감탄하게 되고 글을 읽는 내내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쓸까’하는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잔잔하게 시작하였던 초반부와 달리 중반부에서는 주인공을 위험에 빠뜨리는 다양한 위기가 등장하고, 마지막은 잦아드는 파도처럼 고요해진다. 글의 시작과 끝이 동일한 요소로 연결되어 작가가 치밀하게 계획하고 적어 내려간 글임을 느낄 수 있다.

    필력과 구성이 감히 ‘완벽’하고, 그래서 어떤 때는 어릴 적 언어영역시험의 ‘예시 지문’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유사 고전이 오래된 고서적책방에 꽂혀 있진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누릴 수 있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독자인 나는, 이 언어영역 예시 지문 같은 완벽함이 마냥 좋진 않았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 문단 배열이 매우 일렬적이고 순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순박이란, 마치 이 같은 소설의 표본 지침처럼 별다른 꾸밈이 없다는 뜻이다. 시간 순서에 따라 흐트러짐 없이 착착 놓이는 문단들이 더없이 정직하고 곧다. 문단의 도입부나 끝맺음부분에서도 주의를 잡아끄는 참신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 나 같은 경우에는 읽는 내내 글이 환기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자연스레 집중도가 낮아졌고 계속해서 글을 읽어나가기 버겁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 기분이란, 곧고 평평한 길에서 심심치 않게 지루함이란 늪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 늪에 빠져 나는 곤혹스러움에 허우적거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심이 곧고 착한 주인공에 어울리는 문단 전개, 그것이 곧 이 소설이 채택한 요소임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꼭 이러한 구성만을 고집해야 했는지에 대한 아쉬움은 끝까지 저버릴 수가 없다. 무협 판타지이기 때문에 좀 더 역동적이고 새로운 요소를 차용 했어도 좋았을 듯하다.

    더불어 화공으로서의 스토리를 기대한 독자들이라면 내용에 충분히 만족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느꼈는데, 이 기대가 채워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화공이라는 단어가 주는 예술적이고 섬세한 느낌에 무협의 반전을 설계한 거라면 탈 없이 수긍하겠지만, 그 무협 역시 전반적으로 잔잔한 느낌이다. 무협 장르가 줄 수 있는,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경험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작가가 두 마리 토끼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소설이었으나 그 어떤 토끼도 잡지 못한 소설이다. 그러나 갈팡질팡 고민하는 그 모습이 아름다웠음에는 부정할 길이 없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일기주방장 | 9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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