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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온하던 일상이 모험 가득한 하루로 뒤바뀌고 익숙하던 것들이 낯선 것이 될 때, ‘서울역 네크로맨서’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주인공 강우진이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아르펜 행성에 떨어진 후, 다시 지구에 돌아오기까지의 세월 20년. 그 사이 지구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지하철역은 몬스터들이 드글드글대는 던전으로 변해 있었고 그에 따른 새로운 사회 체계, 자본 질서, 권력의 각축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지구의 이 당황스러운 변화는 이 모든 상황이 끔찍이도 익숙한 주인공에 의해 담담히 서술된다. 알지 못했던 행성에 떨어져 오랫동안 가족을 그리워했다는 주인공의 설정은 주인공에게 인간적인 요소를 부여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여겨질 정도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웠던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여동생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것 역시 독자에게 감정적인 자극을 크게 부여하지 않는다. 소설의 기본적인 배경 설정 그 이상의 신파적 요소를 추가하지 않는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강인하고 담대한 주인공의 성격과 강력하게 결부되어 있다. 시점이 계속해서 변화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의 관점에서 주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니 더욱 그러하다. 개연성을 층층이 쌓아올렸던 조연의 등장도 때가 되면 ‘헉!’소리가 나올 정도로 가차 없이 끊어 낸다. 작가라면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이 남을 텐데 이토록 가차없는 것을 보면, 작가가 주인공과 자신을 얼마나 훌륭히 합치시켰는지 어림 짐작이 간다. 주인공이 싸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긴, 완벽한 이상향적 캐릭터인걸 보면 이런 짐작에 확신이 더해진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소설이 완벽한 흥행을 이루는 순간은 주인공과 작가, 그리고 독자가 한마음 한 뜻으로 합치 될 때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그러했던 것처럼 독자 역시 캐릭터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고 대입하는 것이다. 허구 속 ‘흥미진진’이 아닌 현실 속에서 스토리를 통한 희열과 감정 동요를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설은 독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리얼한 쾌락을 선사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독자가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하지 못한 경우, 이렇게 훌륭한 스토리에도 중간 이탈 독자가 생겨난다. 탄탄한 에피소드와 구성임에도 불구 왜인지 더 이상 손이 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독자가 캐릭터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지 못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주인공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와 성격 때문이었다. ‘권선징악’류의 히어로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아마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 경우 나는 작가가 상황과 맥락에 따른 인과성 묘사에 좀 더 집중해줬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데, 사실 작가가 독자에게 친절할 의무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바라게 되는 건, 마지막까지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싶은 독자의 또 어쩔 수 없는 욕심이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탄탄한 구성과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힘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동반한 욕심 한 자락이 끝에 머무는 소설이다.

    일기주방장 | 9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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