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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있어야 자신의 것을 지킬 수 있다."
이번이 마지막 방이에요.
다소 짜증 섞인 말투. 앞장서 걸어가던 부동산 업자는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열었다. 형편없는 방이었다. 업자는 역시나 그 돈으로 무슨 방을 구하냐는 반응. 이제는 익숙했다. 오늘도 방을 구하지 못 했다. 벌써 이 근방 부동산을 3개나 돌았다. 돌아가는 버스 안, 시무룩해져 있는 그녀의 손을 나는 말없이 잡아줄 수밖에 없었다. 돈이 없어서 서러울 수 있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학생, 방 좀 빼줘야겠어
한 달 전, 주인 할아버지. 월세를 올린다고 했다. 우리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통보되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돈이 필요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우리를 위해서, 그녀를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하겠습니다. 뭐든 하겠습니다.
모 기업의 영업직으로 입사했다. 선배는 실적만 높으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무슨 수를 쓰든, 실적만 높으면 된다." 모두들 이 말을 주기도문처럼 중얼거렸다. 사무실에는 자신이 좋아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위 말하는 가장들이 그랬다. 그들은 '처, 자식 먹여 살리자고' 일했다. 나 또한 그랬다. 남들 앞에서 굴욕을 당하고 바닥을 기어도, 지켜야 할 것이 있기에 버티고 있었다.
권력이 있어야 자신의 것을 지킬 수 있다.
이 말은 <황후의 남자>를 크게 관통하는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해당된다.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사랑을 했던 게 어린 시절의 사랑이라면, 어른들의 사랑은 그것을 외부로부터 지킬 수 있는 권력(돈)도 필요하다. '마음'만으로는 함께 살 집을 구할 수 없다.
이제 갓 성인이 된 '현화공주'가 신국의 공녀로 끌려간 것도, 애초에 부주국의 힘이 약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왕 '이정'은 자신의 딸을 지키지 못해 남몰래 눈물을 보이고 호위무사 '정환' 또한 자신과 현화의 신분 차이에 개탄하며 고군분투한다. 여기에 신국의 태자, 시윤도 권력에 관심이 없었으나 곧 권력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황후의 남자>는 풋내기들이 어른들의 사랑을 배우는 '성인식' 혹은 '성장통'을 그린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그저 상대를 좋아하며 '꽁냥꽁냥'하기만 하는 1차원 적인 로맨스가 아닌, 각자의 이해관계가 궁중이라는 배경 속에서 교묘하게 얽혀가는 궁중/사극 로맨스 소설이다.락충만 | 95개월 전좋아요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