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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각시가 사랑한 꼭두각시 >

    이 소설은 로맨스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사랑’의 아름다움, 애틋함, 행복 보다는 ‘욕망’이 아픔이 보다 두드러져 보였다. 사랑에 정치가 쓰인 것이 아니라 정치에 사랑이 쓰인 것 같다고나 할까. 이 때문에 사랑 즉, 로맨스를 이끌어가는 정환과 현화 그리고 시윤의 관계에 집중되어야 할 시선이, 정치적 암투를 이끌어가는 원윤과 권정택 그리고 민진홍에게까지 확장되어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더 집중하여 보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그러니까 사랑이 아닌 ‘관계’에 집중해서 이 소설을 감상해 보자면 마치 ‘꼭두각시놀음판’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줄을 매달아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자신 이외의 사람은 사람의 모습을 한 ‘인형’일 뿐이다. 그들은 무대 위 어둠 속에 서서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괴뢰사(傀儡師)가 된다. 그리곤 원하는 극의 진행을 위해 꼭두각시의 손에 발에 구멍을 뚫고 실을 이어 잡고 이리 저리 움직여댄다.

    대표적으로 시윤과 그의 어미 민진홍의 관계가 꼭두각시와 괴뢰사의 관계와도 같다.

    [꼭두각시처럼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시윤이었다.]

    혼인을 하지 않겠다며 완고히 거절하는 시윤의 모습에 민진홍이 속으로 생각한 독백이다. 민진홍은 아들의 머리에 ‘보다 크고 화려한 왕관을 씌워주겠노라, 그를 위해 온갖 치욕을 견뎌 왔노라’ 하며 시윤을 옭아맨다. 정치의 사정도 모르게 하고 오로지 가만히 있으라, 뜻을 가지지 말라 한다. 이에 시윤은 현화를 만나기 전까지 끈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꼭두각시처럼 그렇게 어둠의 밑에서 바닥을 긁어 대 손톱에 피가 맺히고 살갗이 패이는 한이 있더라도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그의 자유를 잃은 상처는 욕망의 가장 밑바닥인 성욕으로 표현되었더랬다.

    아이러니 한 것은 자유를 잃은 이 인형이 의지를 얻자, 그 아래에 현화라는 이름을 가진 인형을 두고자 꼼지락거렸다는 것이다. “너는 나의 것이다”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자신을 이해해 주는 존재에 대한 애정이 비뚤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윤 자신이 받아온 사랑이 소유물에 대한 집착에 가까웠고, 배워온 것이 그것뿐이었다. 자신의 딱딱한 인형의 손으로는 사람을 보듬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다. 처음 현화를 만나고 현화를 대하는 태도에 그런 삐뚜름한 태도를 본 독자들이라면 이 역시 시윤이 사물로 살아온 세월에 대한 아픔의 자국임을, 그래서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시윤의 무례함이 끔찍하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시윤에 대한 성장 과정이 작가님에 의해서 충분히 설득력 있게 표현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고로 이제부터 이 소설의 내 최애는 시윤이다(결론)

    둥실 | 88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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