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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렸을 적 리니지에 빠져살던 형에게 애걸복걸하여 7해골셋과 레이피어를 잠시 얻어본 적이 있었다.

    나이가 어려서인지 리니지를 금방 접을 것이라 단언하는 형에게 아니라고 바락바락 대들어 얻은 아이템들이었지만 게임이용료 자체가 유료이고, 액션들 또한 단순해 금방 질려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더해 극악이라고 부를 수 있던 레벨업 속도 또한 게임을 접는데 한몫을 했었다.

    그래서 비슷한 형식의 게임이면서 노력은 상대적으로 덜 투자해도 되는 미르의 전설2를 했는지도 모른다.


    소설 린저씨를 보고 있으면 왠지 있지도 않은 옛 추억이 떠오르는 기분이다. 빈줌을 사용하고 러쉬를 감행하며 성 하나를 먹기 위해 모두가 모여 담배를 뻑뻑 빠는 모습들.
    이런 모습을 어찌 아냐 묻는다면 한 때 사촌형은 사무실을 돌리는 사장이었고, 성주노릇도 했었기에 그것을 지켜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여기저기서 화려하게 터져대는 물약의 이펙트들 때문에 정작 그것이 공성중인 화면이란 것도 몰랐지만 이제와 그 때를 생각해보니 정말 치열하게, 정말 돈을 물 쓰듯 쓰며 게임을 했다는 것이 짐작된다. 이제는 어엿한 베트남음식점의 사장님이 된 사촌형이 아직도 리니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린저씨란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다 싶기도 하다.


    사실 린저씨를 보면서 이해는 되지만 이해가 어려운 것이 하나 있었다.

    커츠서버에 모인 구 리니지의 유저들은 분명 캡슐을 착용하고 가상현실게임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창, 귓속말, 혈창 등의 시스템은 여전히 살아있다.

    "야 이 가습기야"를 반복하는 주인공을 보고 있자면 외창은 입으로 말하는 것인지 손으로 치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만약 채팅으로 작성하는 것이라면 그런 무지막지한 말빨을 하나하나 채팅으로 작성한다는 것과 일사분란한 지휘를 진행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자연스레 입으로 소리내는 것이라면 외창은 앞을 향해, 혈창은 뒤를 향해, 귓속말은 귀에 다 대고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예를 들어 군주인 주인공과 부군주인 동생, 적대군주가 함께 한자리에 모인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부군주는 적대군주에게 귓속말을 한다. 그는 과연 채팅을 쳤을까, 아니면 귀에다 대고 말을 했을까? 귀에 대고 말했다면 주인공이 가만 있지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

    내용은 치열한 전투와 주인공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통해 빠르게 진행된다. 리니지의 공성이나 게릴라 전투, 한번 목숨을 잃는 것이 단순히 경험치를 잃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의 거대한 자산 자체를 잃을 수 있다는 특징을 잘 살린 진행이라고 생각한다. 루즈하게 이루어지는 전투였다면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을텐데 그런 모습도 찾기 어렵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게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도 사실상 게임소설이 아닌 정치소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는 것이다.
    전투는 단지 각자의 이익을 놓고 상대방을 강제하거나 억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 사실상 인게임 내에서 그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레벨도, 장비도 아닌 명분과 정치이다.
    사실 장비의 경우 그것 자체가 돈이 되고 무력이 되기에 중요시하긴 하지만 러쉬를 감행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 그들은 그 손해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가뜩이나 없는 형편에 2천만원 값어치의 아이템을 강화해 깨먹는 것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이다.

    라이트유저들이 아닌 대놓고 헤비유저들의 싸움이다보니 소설을 읽다보면 이들이 직장생활은 정말 하고 있는 것일까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쉬운 점은 어느순간부터 주인공의 주변 캐릭터들이 점차 소외되고 있다는 점과 리니지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

    몇몇 챕터에서 특정 캐릭터를 중점으로 살려 이야기를 진행하곤 있지만 초반부 상당한 비중이 있어보이던 빛형제들은 어느새 검빛을 제외하고는 그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글을 읽다보면 빛들 중 주인공과 가장 성향이 유연한 은빛이 부군주를 맡는다는 내용을 본 것도 같은데 어느새 부군주는 검빛이 되어있기도 했다. 내가 잘못 읽은것일까 아니면 중간을 졸면서 본것일까.

    뭐가 어찌됐든 우리가 최강이다, 줄여서 최강혈맹은 그 구성원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인물의 수가 매우 적다.
    개철혈명의 개철, 만만혈맹의 만만, 초아, 한별, 검빛, 은빛, 핫피스 등이 주인공의 옆을 보조하며 하나 둘 씩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제는 더이상 혈맹과 혈맹을 잃지 않겠다며 물약 하나라도 더 지원해주고자 악독한 결정도 서슴치 않는 주인공이 막상 그들에 대한 관심은 크게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달까?

    가장 허무했던 순간은 읽으신 독자분들만 아실 그 부분.
    카베까지 먹은 검빛이 취한 액션은 조금 오버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충을 그렇게 외치고, 사람을 좋아한다고 묘사된 검빛이 이 상황에서만 유난히 땡깡도 심하고 사춘기소년과 같이 행동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계속해서 진행하기 위한 설정이었겠지만 괜스레 속이 쓰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다소 불친절하다는 것은 리니지에서 흔히 사용하는 은어들이나 줄임맘들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딱히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시체를 밟고 보라를 타고, 베르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은 게임을 제대로 즐겨보지 못한 나에게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님이 필력으로 독자들의 모자란 배경지식을 메꿔내고는 계시지만 그것도 일정수준의 한계는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글 자체는 재미있다. 조금만 봐야지하고 생각했던 100편의 연재분을 어느새 다 읽어버리고 지금은 제발 2편씩만 올려달라는 독자분들과 같은 생각으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 다음 글은 어디 있나요?

    만담꾼 | 88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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